주원장의 단군론, 삼성당 혁파의 단초였다 “태종조(太宗朝)에 하륜(河崙)이 제사(諸祠)의 목상(木像)을 혁파할 것을 건의하여 삼성(三聖)의 목상도 또한 예(例)에 따라 파하였다 하며, 의물(儀物)의 설치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 1472년 2월 황해도관찰사 이예(李芮 1419-1480)가 성종에게 상주(上奏)했다. 구월산(九月山) 삼성당(三聖.. 카테고리 없음 2013.03.04
창개명(創改名), 천년의 비극 “나도 많이 늙었구나, 이토록 오랫동안 꿈에서 주공을 뵙지 못하다니” (子曰甚矣吾衰也久矣吾不復夢見周公) 논어 술이편(述而篇)에 기록된 내용이다. 주공(周公)을 못내 그리워했던 공자의 이 한마디로 주나라는 이상향(理想鄕)되었다. 세인들의 가슴을 적시고, 주공은 성인의 반열에 .. 카테고리 없음 2013.02.25
무당의 아들 醫書를 쓰다 무당의 아들로 태어나 과거에 급제하고 직제학까지 올랐다. 신분과 계급이 절대적이었던 조선 유교시절, 이는 대 사건이며 파격이 아닐 수 없다. 세종실록에 기록된 무당의 아들 김문(金汶·?∼1448)을 살펴보자. “그 어머니가 무당노릇을 하여 감악사(紺嶽祠)에서 먹고 지냈다.”라 했다.. 카테고리 없음 2012.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