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라는 말이 처음 쓰인 것은 기원전 1,100년 경 주(周)나라 때이다. 주 성왕(成王) 때의 문헌인 시경, 대아 민로(詩經 大雅民勞)에 중국이 혜택을 받고 사방이 안정이 되었노라 (惠此中國 以綏四方)'라 기록되어 있다.
서경, 자재 (書經 梓材)에는 '황천이 중국에 백성을 주고 강토를 개척하게 하니...(皇天旣付中國民 越厥疆土)'라 하였다. 여기서 언급한 '중국'은 천자가 통치하는 중앙지역으로 경사(京師) 또는 서울 지역을 의미한다.
서주(西周 B.C 1066~771) 때 주공(周公)이 낙양 (洛陽)을 건설하고, 천하의 중심이라 하여 '中國'이라 불렀다.
맹자(孟子 B.C 372~B.C 289)는 등문공 상(滕文公上)에 북쪽으로 중국에 와서 학문을 배웠다.[北學於中國]”고 기록했다.
시경과 윗 글에 쓰인 중국이라는 말들은 "국중(國中), 즉 “나라의 가운데"라는 의미로 쓰였을 뿐 국가라는 의미는 아니다.
주대(周代)에는 하남성(河南)을 중심으로 한 중원지구의 중국인을 '화하족(華夏族)'이라 불렀다. 화하(華夏)와 중화(中華)를 중국의 대명사로 사용하기도 했지만, 정식 국명으로는 사용한 적이 없다.
1842년의 남경조약(南京條約)에 “중국은 영국에게 은화 2,100만 원(元)의 배상금을 지불할 것” 이라 하여 가장 먼저 외교문서에 중국이란 단어를 썼다. 이 때의 나라는 청(淸)이었다.
중국이 정식으로 국호로 사용된 것은 중화민국이며, 중국으로 약칭했다. 중화의 국가라는 의미였다. 현재의 중국은 바로 중화인민공화국이다.
이러한 것을 보면, 상고시대의 중국은 현재의 중원지방 일부인 산서, 산동, 하남, 하북 일대 만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이라는 단어의 뜻을 다시 살펴 보자.
첫째, 한 나라 때 시경을 주석한 모장(小毛公 毛萇)에 의하면 "중국, 경사야(中國, 京師也)"라고 주석을 달아놓았다. 경도(京都), 경사(京師)는 서울지역이라는 의미이다. 한말의 학자인 유희도 "제왕이 거주하는 수도를 중(中)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중국이라고 불렀다“고 했다.
둘째, 황하의 남북을 중토(中土), 중원(中原), 혹은 중하(中夏), 중화(中華)라고 불렀으며, 중국이라고도 불렀다. 이러한 칭호는 실제로는 황하유역 일대를 가리킨다. 상서 서(尙書序)에 ‘欲以觀中國之政’ 라는 단어와 사기 초세가(史記 楚世家)에 “나는 오랑캐이다. 중국의 시호를 받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데, 당시의 초나라 땅은 장강의 중하류였다. 여기서 말하는 중국은 황하유역의 몇 개 국가에 대한 통칭이라고 볼 수 있다.
한나라 때부터는 사람들이 한족이 건립한 중원왕조를 중국이라고 불렀다. 소수민족이 건립한 중원왕조도 또한 중국이라고 불렀다. 남북조 시기에 남조는 스스로 "중국"이라고 불렀고, 북조는 "위 오랑캐(魏虜)"라고 불렀다. 북조는 스스로를 "중국"이라고 부르고, 남조를 "섬 오랑캐(島夷)"라고 불렀다. 요나라와 북송, 금나라와 남송도 서로 자신을 중국이라고 불렀고, 상대방을 중국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청나라 때에는 모든 영토를 관할하고 스스로를 중국으로 불렀다. 19세기 중엽 이후에 중국은 국가의 모든 영토를 지칭하는 말로 쓰였다. 1912년 신해혁명 끝난 후에 민국이 성립되면서, 한, 만, 몽, 장, 회족의 5대 민족이 하나로 되어 중화민국(中華民國)이라고 했다.
1949년에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이 성립되면서도 명칭을 중화인민공화국으로 하고, 약칭으로 ‘中國’이라고 하였다.
대륙의 역사에서 어느 왕조도 중국이라는 명칭으로 나라 이름에 직접 붙인 적은 없었다. 한나라의 국호는 한(漢), 당나라의 국호는 당(唐)이었으며 청(淸)나라 정부도 외교문서에 대청(大淸)으로 불렀지, 한 번도 중국이라고 칭한 적은 없었다.
조선 건국 시기의 중국 명칭은 어떠했는가.
태조 총서에 “금년 봄에 윤이와 이초가 도망해 중국으로 들어가서(於今年春, 有尹彛、李初逃入中國)”라 썼다. 정종 2년(1400년)의 기록에는 ‘중국 사녀 20여 명을 요동에 돌려보냈다. (送還中國士女二十餘名于遼東)’고 썼다. 1401년(태종 1) 4월 ‘물건의 값이 우수리[餘零]가 있으면, 중국의 동전을 겸하여 쓰는 예를 모방하여 (物價有餘零者, 倣中國兼用銅錢之例)’라 하여 명(明)나라 서울을 지칭했을 뿐이다.
대륙은 마고(麻姑)로부터 시작되어 한인, 한웅(桓仁 桓雄)의 땅이었고, 단제(檀帝)의 숨결이 깃든 동이(東夷)의 영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