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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함노(安含老)의 일대기

한문수 2008. 11. 4. 16:51

안함노(安含老)는 삼성기를 지었다.

말하기를, "국조 단군왕검의 아버지이신

한웅천황 때부터 천부경을 설하였다"

 

또 한웅천황은 개천하여 만민을 교화할 때

천경과 신고를 강론하시어 크게 가르침을 펴시었다"

안함노의 일세가 납자필람(衲子必覽)에 보여 정리한다.

 

이 기록에 의하면, 안함(安含)은 법명이요,

노(老)는 존칭으로 붙여 졌음을 알 수 있다.

성(姓)은 안(安)씨이며, 이름은 함노(含老)라 불려 졌음은 잘못이다.

 

그는 신라의 고승으로 578년 (진지왕 17) 태어나,

640년(선덕여왕 9)에 입적했다.

흥륜사 십성(十聖) 중의 한 사람으로 속성은 김(金)씨이다.

 

해동고승전에 의하면, 영민하고 도량이 넓었으며

일찍부터 뜻을 나라 밖에 두었다.

 

600년(진평왕 22)에 고승 혜숙(惠宿)과 함께

이포진(泥浦津)에서 배를 타고 중국으로 가다가

섭도(涉島) 근처에서 풍랑을 만나 되돌아 왔다.

 

이듬해 칙명을 받고 법사가 되어

중국 사신과 함께 중국으로 건너 가서 황제를 배알하고,

대흥사(大興寺)에 머물렀다.

 

그 뒤 십승(十乘)의 비법(秘法) 및 현의(玄義)와

진문(眞文)을 5년 동안 배우고,

605년 우전국(于?國) 사문 비마진제(毘摩眞言+帝),

농가타(農加陀) 등과 함께 귀국하였다.

 

서역의 승려들이 신라에 들어 온 것은

이 때가 처음이라고 한다.

만선도량(萬善道場)에서 입적하였다.

 

한림 설모(薛某)가 왕명을 받들어 비문을 지었다.

저서로는 참서(讖書) 1권을 지어

견문한 바를 기록하였다고 하나 전하지 않는다고 썼다.

 

그러나 조선조가 전조(前朝)와의 고리를 끊고,
참서(讖書)라 이름하여 상고(上古)를 참람하게 짖밟은
삼성기(三聖記)가 아니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