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궁지에 몰렸을 때 말하는 이판사판은 절박한 경우에 쓰는 말로 쓰여지고 있다
불가에서 유래된 이 말은 조선조 원년부터 숭유억불 정책으로 파생되어 임진왜란이 시작될 무렵 극에 달한다.
참선(參禪)과 독경(讀經)에 힘써 세속과의 거리를 유지한 이판승(理判僧)과
황폐해 가는 절의 운영과 유지를 위해 버팀목을 자임한 사판승(事判僧)을
정권 차원에서 이를 회유책으로 이용, 분열 조장하기도 했으니
조선 5백년 위정자들이 국교로 세운 유교와 그 맥을 같이 한다.
사판승이 없으면 가람의 존재 가치가 무의미 해지고,
이판승이 없으면 부처님의 지혜광명이 이어 갈 수 없음이니,
그 어느 한 쪽이라도 없어서는 안된다는 역설적 상호관계를 갖고 있다.
이판·사판은 끝장이라는 논리는 천민으로 추락하고
하급민이라는 마지막 신분 계념에서 나왔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1925년 남산 중턱에 세워진 일본 신궁은
그들의 국조 신 '아마데라스 오미가미'와
조선조를 멸망시킨 명치천황을 제신으로 모셨다는 신사였다.
1935년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따른 기독교계의 양상은
1938년 정치적 국민의례에 지나지 않으므로 신앙에 배치되지 않는다고 결의한
장로교 총회와 감리교 연회의 결의는 일제의 탄압에 굴복한 면도 있으나,
한편 교회를 존속시키려는 의도도 담겨있었을 것이다는
내용(한국종교사상사 239면)을 보면,
시대적 상황이 우리에게 주는 커다란 교훈이 아닐까 싶다.
상상 속의 동물인 '낭과 패'는 상호 보완을 통해 '낭패'를 지양하고
서로를 지탱해 줌으로써 실패를 가져 오지 않는다는
지혜를 주었으니, 하늘의 뜻이 여기에도 있음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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