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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수장(曹操水葬)

한문수 2008. 2. 12. 15:49

 

조조수장(曹操水葬)


조조는 황건(黃巾)의 난을 진압하면서 장군으로서 고위직에 올랐다.

환관의 양자였던 그는 한의 황제가 있던 수도 낙양(洛陽)을 중심으로 하여,

전략적으로 중요한 북방지역을 점령하고 점차 제국의 대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기원전 206년부터 426년을 존속했던 한(漢)나라 말기

전설 속의 그는  빈틈없고 대담하였으며,

한편 무도한 악당의 대표적 인물로도 묘사되고 있다.

 

그의 지략과 한때 100만 명이 넘었다는 그의 대군은 중국 역사에서 오랫동안 악명이 높았다.

천하를 호령했던 그는 살아생전 사악하며 마술적인 힘을 가진 인물로 등장하나

근대의 역사가들은 그를 노련한 장군이자 실제적 정치가로 보는 경향도 있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를 통해 그 윤곽을 뚜렸이 했으나,

우리 한민족의 역사를

객관적 관점이 아닌 시각에서 서술한 사악함이 같이 뭍어 나고 있다.

어쨌던 조조는 그 악당적 삶이 후세에 드러나기를 두려워 했음인가?.

 

무덤이 파헤쳐질까 두려워하여 죽은 뒤 72개의 가짜 무덤을 만들게 하였으나,

1500여 년이 지나 수장(水葬)된 모습으로 드러났는데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이 기록한 구외이문(口外異聞)에 보인다.


‘1748년에 淸 황제가 장하(漳河)에서 고기잡이를 하는데,

헤엄치는 자가 별안간 허리가 끊어져 물 위에 떠오른다.

 

황제가 군졸 수만 명을 풀어 그 냇물 옆을 파서 물을 돌리고 살펴보니,

물 속에는 수많은 쇠뇌에 살이 메워져 있고 그 밑에는 무덤이 있었다.

 

드디어 발굴하여 한 관(棺)을 얻었는데,

은해(銀海)와 금부(金鳧) 등의 부장품(副葬品)도 있거니와

황제의 면류관(冕旒冠)과 옷차림을 갖추었으니, 곧 조조(曹操)의 시신이었다.

 

황제가 친히 관묘(關廟) 소열(昭烈)의 소상(塑像) 앞에 나아가

그 시신을 꿇리고 목을 잘랐었다.

 

이는 비단 천고 신인(神人)의 분통을 씻은 것뿐만이 아니라,

쾌히 70총(塚)의 의안(疑案)을 깨쳤다’

라 했다.

 

220년 아들 조비(曹丕)는

아비 조조가 죽은 후 한의 제위를 찬탈하여

위(魏)나라를 세웠다.

 

조비는 둘째로 태어났으며,

그의 형 조앙(曹昻)과 아우 조식(曹植), 조창(曹彰), 조충(曹沖) 등 

형제 25명이 기록에 남아 있다.

 

조앙은 전투 중에 죽고, 조조의 총애를 가장 많이 받았던 조충은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이름이 났으나, 요절했다.

 

이들 형제들은 문장이 뛰어 났으며, 조비는 정치적 감각이 뛰어난 반면

성격은 음험했고 차가웠다. 조식은 문학적인 재능이 뛰어났다.


조비는 왕권을 물려받고 나서부터

조식을 탄압하다 못해 아예 죽이기로 마음 먹는다.

 

어느 날 연회를 열어 조식을 청해놓고 술자리가 무르익을 때 조식에게 명한다.

"네가 그토록 시를 잘 짓는다면

내가 일곱 걸음 걷는 사이에 시(詩)를 지어 보아라.

만약 시를 짖지 못하면 너를 죽이겠다" 고 말한다.


생명이 경각에 달했으나 조식은 태연히 시를 읊는다.

그 유명한 칠보시(七步詩)가 바로 이때에 지은 시다. <世說新語>

 

콩대를 태워서 콩을 삶으니   -煮豆燃豆箕(자두연두기)

가마솥 속에서 콩이 우는구나  -豆在釜中泣(두재부중읍)

본디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건만  -本是同根生(본시동근생)

어찌 이다지도 급히 삶아 대는가  -相煎何太急(상전하태급)


조비 또한 8살에 이미 문장을 지을 정도의 천재로 7언 시의 시조이자,

중국 최초의 문학비평가로 추앙 받는 인물이다.

논문이라는 말은 바로 이 사람이 쓴 책에서 유래한다.

 

셋째 조식은 형 조비보다 한수 위의 문장가였다.

조조는 늙어 기력이 쇠해지면서 자신의 왕위를 맏이인 조비보다

영특한 삼남 조식에게 물려주려 했다.

조조가 이런 조식을 후계자로 삼으려고 했었으니 눈에 가시일 수밖에 없었을 터.


여기서 장자방 같은 스승들의 싸움 또한 치열했으니,

조비의 스승은 사마의(司馬懿)였고, 조식의 스승은 양수(楊修)였다.

 

두 사람간의 암투는 죽루사건(竹蔞事件), 업성문사건(업城門事件),

송부출정(送父出征)사건, 취주오사(醉酒誤事)사건, 사마문(司馬門)사건 등

여러 과정을 거쳐 조비가 승리하고 조식이 패배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탐욕의 끝은 어디인가

한 생을 지내며 나를 놓을 수 없음인가

 

인류가 탄생하고, 고대로 부터 지금까지 

내 안에는 움껴쥐고, 놓을 줄 모르는 모진 본능만이 존재함인가

 

그래서 부처님이, 예수님이 그 처절한 외침을 하고 있음인가